태그 : 이재철

탕자의 비유에는 왜, ‘어머니’가 나오지 않을까

다시 시작된 이어령 박사와 이재철 목사 대담
 

▲29일 오후 이어령 박사(왼쪽)와 이재철 목사 간의 대담이 이뤄지고 있다. ⓒ양화진문화원 제공

그들이 돌아왔다. 지난해 ‘지성과 영성의 만남’을 주제로 8차례에 걸쳐 대담을 펼쳤던 이어령 박사(양화진문화원 명예원장)와 이재철 목사(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가 이번에는 ‘문화로 성경읽기-예수와 비유’ 시리즈를 시작했다. 29일 오후 8시부터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선교기념관에서 열린 이번 대담에서는 ‘탕자의 비유’를 분석했다.


이번 주제가 ‘문화로 성경읽기’였던 만큼, 사회자 없이 주로 이재철 목사가 이어령 박사에게 질문하는 형식으로 대담이 이뤄졌다. 이재철 목사는 지난 2월부터 7개월간의 안식월(月)을 가진 바 있다.

이어령 박사는 먼저 ‘성경 읽기의 재미’에 빠져보라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읽을만큼 성경은 매력적인 책인데, 기독교인들은 믿음으로 읽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 눈에 비치는 그 즐거움을 모른다”며 “제가 한국에 처음 기호학을 소개했는데, 인간의 언어로 된 것들을 철저히 기호화하면 하나님의 언어가 유추되고,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없다”고 밝혔다.

‘첫째 아들 같은’ 바리새인들에게 하셨던 탕자의 비유


▲이어령 박사.
이재철 목사는 “이 비유 속에는 아버지와 첫째, 둘째 아들 등 세 인물이 등장한다”며 “모든 사람들은 ‘탕자 돌아오다’로만 얘기하는 데 이는 잘못 읽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먼저 이러한 비유가 나오게 된 이유를 살펴야 한다. 세리와 창기 같은 죄인들이 나와서 예수님 말씀을 들으려 했을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왜 죄인들에게 이야기하고 말씀을 전하느냐고 질문했다. 결국 이 비유의 포커스는 평신도나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바리새인이었다.

이 박사는 “‘분리하다, 쪼개다’는 뜻의 바리새인들은 천민과 귀인, 죄인과 선인,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 등 철저히 고르는 사람이었고, 율법을 가장 많이 내세운 교조주의자들 같았다”며 “그래서 탕자의 비유를 비롯해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를 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먼저 99마리 양을 놔둔 채 잃은 양 1마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이 잃은 양 한 마리를 뜻하는 죄인들, 세리들, 지탄받는 사람들까지 끌어들이느냐고 따졌다. 여기에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들이 99마리 중 하나이고, 의로운 사람을 놔둔 채 오히려 죄 지은 자를 구하러 가는 게 내 스피릿이며, 너희들이 생각하는 의로운 자 99명보다 참회하는 1명의 회개자를 더 찾으신다고 답하시며 바리새인들의 논리를 철저히 부수시는 것이다. 이 박사는 “유목민이라면 이 양치기의 마음을 당연히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한 드라크마를 떨어뜨린 여인 이야기다. 지금으로 치면 10원짜리 동전 하나가 떨어졌는데 나머지 9개의 동전을 놔둔 채 등불을 들고 온 방을 찾아다니는 식이다. 유목의 경험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누구나 사용하는 화폐에 관한 이야기다.

세번째 ‘탕자의 비유’는 아들이 집을 나갔지만, 아버지가 찾아나서지 않은 점에 특색이 있다. 앞의 두 비유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직접 찾아나섰고, 잃어버린 동전 하나를 찾으로 구석구석을 뒤졌다. 하지만 여기서는 큰 아들을 ‘내버려둔 채’ 작은 아들을 찾아나서지는 않은 것이다. 이어령 박사는 “여기서는 ‘찾다’가 아니라 ‘맞이하다’인데, 양들은 한 번 길을 잃으면 돌아오지 못하고 동전도 마찬가지”라며 “하지만 사람은 찾지 않아도, 영혼을 가진 존재는 참회하며 뉘우치고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왜 아버지는 찾아다니지 않고 기다렸나

예수님은 찾아다녔다기보다, 세리와 창기들이 찾아와서 복음을 전해준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왔기 때문에 참회했고, 이제 죄인이 아니다. 이 박사는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내가 찾아다녔어? 지들이 왔지’라고 말하는 것”이라며 “바리새인들은 마치 큰아들처럼 뭔지도 모르고 옆에 있게 된 꼴이고, 가만히 보면 통쾌하기도 하고 바리새인들이 꼼짝 못하게 비유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예수님께서 왜 같은 주제를 3번씩 이야기했는지 모르고 뒤의 탕자의 비유만 읽으면 안 된다”며 “세 비유는 각각 유목민에게, 상인에게, 정주민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시대와 직업을 초월해 누가 들어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도록 한 유니버셜 구조”라고 전했다. 또 “바리새인들이 똑똑했으면 비유를 듣다가 ‘내가 큰아들인가? 큰일났구나’ 했을 정도로 빈틈없이 바리새인들을 향해 짜여진 비유”라며 “그래서 이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레토릭이고, 에덴동산과 아담·하와, 그 아들인 가인·아벨 등까지 기호학적으로 하면 너무 기가 막히고, 부분과 전체가 같은 프랙탈 구조”라고 덧붙였다.

이재철 목사는 이에 “작은 아들이 뉘우치고 돌아왔으며 아버지는 맞아준 것밖에 없다고 하셨는데, 탕자의 스스로 뉘우침만 강조하면 자기 행위로 인간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할 수 있다”며 “탕자가 뉘우치고 집에 돌아간 근거는 낳아주신 친아버지가 계시고, 종이라도 받아주리라는 믿음에 근거했으므로 아버지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고 질문했다.


이어령 박사는 “왜 양과 드라크마와 달리 아버지는 찾으러 가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다”며 “사실 찾아가는 하나님, 맞이하는 하나님은 같은데, 탕자의 비유만 있었더라면 아버지의 역할이 별볼일 없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예수님은 그래서 세 가지 비유를 함께 사용하셨다”고 풀이했다.

이재철 목사는 또 “아들이 돈을 달라고 했을 때 아버지는 거절하지 않았고, 아들은 부잣집 아들로 좋은 옷 입고 통통하게 나갔다가 허랑방탕하고 돈이 다 떨어져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왔지만 아버지는 그 모습 그대로 동구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며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를 못 알아보고 아버지는 먼 거리에서 보자마자 거지가 된 아들을 알아봤으니 실은 아들을 내보내고 매일 그렇게 기다리신 게 아닌가, 바꿔 말하면 이 아들은 인생의 구렁텅이에 빠지면 되돌아오리라 믿은 게 아닌가” 하는 관점을 나타냈다.


이어령 박사는 “비유법에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는데, 이 대목에서는 바리새인들의 ‘왜 죄인들을 내쫓지 않고 맞이하느냐’는 질문의 답변으로 읽어야 한다”며 “아버지의 입장에서 ‘열 사람의 의인보다 한 사람의 죄인을 더 기뻐하신다’, ‘너희 바리새인들도 대단하지만, 회개한 죄인이 아버지는 더 귀한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냥 믿지 말고, 철저히 지성의 궁극까지 내려가야

▲이재철 목사.
이 박사는 “놀랍게도, 기독교는 파더십(father-ship)만 얘기하지, 선십(son-ship)은 이야기하지 않는다”며 “성경은 아들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우리들의 몫이 아닌가 한다”고 제안했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비유들은 모두 윗사람들이 해 주는 쪽만 이야기했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다”며 “하나님께서 약속을 안 지킨 것 같지만, 조금 늦었을 뿐이지 안 지킨 게 아니라고 하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악과를 강제로 못 먹도록 입을 막는 게 아니라, 회개하는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기다리시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어령 박사는 “아버지는 비유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맞이하신다”며 “스스로 뉘우치는 마음을 주시고, 이를 믿으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령 박사는 “이렇게 기호학적으로 한 구절씩 읽어가다 보면 신학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의미를 철저히 읽을 수 있다”며 “교회에서도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 믿자’고만 하지 말고, 철저히 지성의 궁극까지 가 보고 거기서 막혔을 때 하나님께서 내미시는 손을 잡아야지 우리가 풀 수 있는 문제를 놔두고서는 성경을 읽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요즘 베스트셀러 많이 읽지만, 성경은 나온지 몇천 년 된 진짜 베스트셀러에 롱셀러”라며 “젊은 사람들에게 특히 읽혀야 할 책”이라고 잘라 말했다. 특히 다른 경전들은 깨끗한 이야기만 나오는데 성경에는 민망한 얘기, 불리한 얘기들이 다소 나온다고 했다. 앞뒤가 다 맞으면 읽을 필요가 없고, 합리적으로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지금도 성경은 우리에게 수수께끼를 주며, 우리 능력으로 풀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저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달라지고 읽고 나서도 달라지고 그래서 마치 만두를 먹듯 통째로 먹고 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만두를 분석한다고 껍데기 먹고 양념 먹고 돼지고기 다진거 먹고 한다고 알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자신이 기호학으로 하나하나 따져서 분석했지만, 이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엉성하고 해결되지 않고 모순되는 부분은 만두를 통째로 씹듯 목사님께서 기도와 신앙의 힘으로 해 주셔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기호학으로 감동과 초월은 경험할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이 과정을 철저히 밟아야 하나님께 손을 내밀게 되고, ‘목사님 이거 봐 주십시오’ 하면 목사님은 하나님과 접속해서 풀어주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 언어의 의미를 분석해 가면 그 이상의 것들이 존재하는데, 여기서부터 신학이 생기고 기도의 언어가 생겨난다. “그러니까 내가 교회 나오지 지식으로 치면 내가 왜 교회에 나오겠는가”라고도 했다.


아버지에 두 아들까지… 어머니는 어디로 갔나


이어령 박사는 “덧붙여 꼭 말씀드리고 싶은데, 이 비유에는 좀 나올 법도 한데 어머니가 나오지 않는다”며 “진짜 내 새끼, 하면서 우는 건 어머니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나오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그에 따르면 어머니의 자식을 향한 사랑은 맹목적이고, 타고났으며, 그렇게 주어진 사랑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당연한 듯 타고나 밑에 깔려있는 것이지만, 아버지의 존재는 법과 질서, 정의 등으로 어머니와는 다른 사랑이다. 결국 이 비유에는 아버지가 나오는 게 맞았던 것이다.


이어령 박사는 “하나님을 닮은 아버지상으로 ‘하나님이 아버지시오’ 하는 게 바로 비유”라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와 같고,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와는 다른 이 아버지의 사랑이 아가페와 비슷하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그냥 사랑하는 게 아니라, 권위가 있으므로 비유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이 아버지이시고 날 낳아주셨다고 하면 복잡해진다”며 “아버지의 이름과 어머니의 몸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걸 모두 기호학에서 철저히 따지게 된다”고 했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50338  (원글)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51826 (참고)

by 제이콥림 | 2011/12/05 10:12 | 지성과 영성 만남 | 트랙백 | 덧글(0)

이어령-이재철 ‘지성과 영성의 만남' (2) 교육

 

(사회자) 교육이라는 주제로 한국 사회를 대표하시는 석학 이어령 교수님과 100주년기념교회를 이끌어가시는 이재철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교육이라는 주제가 워낙 광범위하기 때문에 자녀교육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무제한으로 만남을 가져 주실 두 분께 박수 부탁드립니다.

사실 교육받지 않고 훌륭해지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교육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누구나 훌륭한 자녀를 두고 싶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열망이 커서 때로는 우리 교육에 흠을 남기기도 하고 그 열망 덕분에 우리 사회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경이로운 발전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교육을 토론하는 것은 우리 교육이 더 높은 곳으로 나갈 수 있기를 염원하기 때문이겠지요. 제가 너무 근엄하게 시작해서 여러분을 긴장시켰나요. 그러면 이어령 선생님께 묻겠습니다. 교육이 뭐냐고 물어보면 정말 막연하기 짝이 없는데, 교육계에 오래 계셔서 교육에 친숙하신 어른이신데, 교육은 본질적으로 무엇을 추구합니까.

▲ 이어령 박사. ⓒ이대웅 기자
(이어령 박사) 제가 오늘 교회 와서 얘기하지만, 성경에 명쾌한 대답이 있습니다. 떡을 달라는 아이에게 누가 돌을 주겠느냐? 생선을 달라는 아이에게 누가 뱀을 줄 주겠느냐? 교육의 핵심을 찌른 구절입니다.달라고 하는 게 먼저고, 주는 게 나중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달라고 하지 않는데도 주죠. 그래서 생선을 달라는 아이에게 뱀을 주고, 떡을 달라는 아이에게 돌을 주는 그런 교육이 돼 버렸습니다. 정말 배우고 싶은 것은 이것인데 어른들이 아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교육이라고 할 때 가르칠 교(敎), 가르친다는 뜻 아닙니까? 기를 육(育). 가르치면 배우죠. 가르치는 거냐 배우는 거냐. 교육을 가르치는 데 두니까 문제가 생긴다. 배우는 게 뭐냐, 하면 풀리는데 가르치는 게 뭐냐고 자꾸 하니까 교육 하면 학교가 학원이 먼저 떠오르고 제도가 떠오릅니다.

인간이 배우고 싶은 본능,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밝아지려 하는 학습이 중요하지, 교육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 질문에 대해 나는 교육을 말하라 하면 할 말이 없지만, 학습에 대해서 말하라면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육은 가르치는 것을 묻는데, 성경에서는 달라는 쪽에 포커스를 뒀습니다. 이렇게 보면 교육이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어느 쪽에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지겠구나 되겠죠.

(사회자) 성경을 빗대 설명해 주셨기 때문에 이재철 목사님께 다음 단계를 질문하겠습니다. 여기는 크리스천도 계시고 아닌 분도 있는데 목사님이시니까, 크리스천 부모가 자기 자녀를, 학습이라고 하니까 가르친다는 게 말이 이상해지는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교육에 임해야 하겠습니까.

(이재철 목사) 우리나라 교육과 밀접한 이야기가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입니다. 이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제가 학교 다닐 때 초등학교 교과서에 있었어요. 아마 지금도 교과서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학부모가 되신 분들은 거의 다 어릴 때 학교에서 맹모삼천지교에 대해 배우셨죠. 내용은 아시다시피 이런 거죠. 맹자 어머니가 맹자를 낳고 공동묘지 옆으로 이사를 갔는데, 장의사 흉내를 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시장 옆으로 갔는데 장사하는 사람 흉내를 내서 이것도 안 되겠다. 그래서 이사간 곳이 서당 옆이었죠. 서당 옆으로 갔더니 공부하는 사람 되었다. 그래서 맹자 어머니는 이사 잘 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모가 되었습니다. 만약 맹모의 교육지침을 따른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모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녀가 무엇을 받으려 하느냐와 상관없이 부모가 일방적으로 줘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 과열 현상이 벌어지고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지만 상관할 필요가 없겠지요.


맹모삼천지교의 새로운 접근

그런데 우리가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보면 맹자 어머니가 과연 지혜로운 어머니인가. 지혜로운 어머니라면 처음부터 공동묘지 옆에 가면 안 되지요. 지혜로운 어머니라면 시장 옆으로도 안 가야죠. 그 어머니는 지혜로운 어머니가 아니라 사실 생각없이 임기응변으로 살아가는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맹모삼천지교에 대해 본질적으로 다른 해석이 있습니다. 저는 그 해석에 100% 동감합니다. 맹자 어머니가 일부러 자기 아이를 공동묘지 옆으로 데리고 가서 살았다. 거기서 몇 년 살면서아이에게 죽음을 가르쳤다. 죽음을 배우지 않고 뭘 배워도 의미가 없다는 거죠. 그 다음에 맹모가 아이를 데리고 일부러 시장 옆으로 갔다. 인간의 생존 현장을 모르고는 배우는 것이 다 추상적인 논리로 끝난다. 그래서 죽음을 알게 하고, 생존 현장을 알게 해 주고, 그 다음에 학교에 가서 무엇을 왜 배워야 하는지 알게 한 것입니다. 그런 어머니가 지혜로운 어머니겠죠.

기존의 해석 논리를 따른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 환경을 줄까가 중요해지는데, 본질적으로 보면 왜 교육받아야 하는가, 왜 받아야 하는가.‘왜’ 가 중요해집니다. 무릇 그리스도인 학부모라면 내 자식에게 왜 공부하게 하겠는가, 내 자식으로 하여금 왜 배우게 하겠는가. ‘왜’를 먼저 생각하는 부모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공부해야 되는가. 두말 할 것도 없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죠. 하나님께서는 부모 자식 선생 학생을 창조하신 게 아니라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짓고 죄성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사람됨이 상실됐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 자식을 인간다운 인간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적어도 그리스도인 부모라면 이 목적에서 중요한 신앙적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고, 그 부분에서 분명하게 매듭이 지어진다면 그리스도인 부모로써 우리 교육제도 속에서도 얼마든지 용기있게 자식을 교육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그러나 사회에서는 사람을 대응 능력으로 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어령 박사) 맹모삼천지교와 똑같은 얘기입니다. 학교에 보낸 뒤, 맹모삼천지교 이야기 뒤편이에요(웃음). 공부를 안 하고 도망간 거야. 어머니가 베틀에서 베를 짜다 말고 잘라버리는 거에요. 지금까지 짰는데 얼마나 아깝냐. 맹자가 이러지 마세요 하는데, 실을 끊는 것 아니냐? 여기서는 학교를 믿은 거죠. 얘가 왜 학교에서 배우다 말고 도망 왔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라면 당연히 내가 뭐 때문에 도망 왔을까. 달라는 것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야 하는데.

일본 얘기인데 유명한 의학 서적이 있습니다. 불후의 의학서에요. 이게 어떻게 해서 나왔느냐가 감동적이에요. 부잣집 아들을 데려다가 의사 되고 싶다고 해서, 의학책을 가르치면 열심히 하는데도 저녁 먹고 물어보면 다 몰라요. 계속 가르쳐도 계속 몰라요. 보통 사람 같으면 쫓겨났을텐데, 알고 보니 이게 책이 잘못된 거에요. 이렇게 어렵게 써 놓으니 얼마나 골치 아프겠냐. 그러니까 애들이 공부하기 좋은 책을 만들어야지. 그 때부터 수많은 의학책을 보고 애들이 알아듣기 쉽게 원하는 것을 가르쳐서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의학책이 됐습니다.

이것이 옛날 어린이들은 기존의 틀 속에서 기존의 교육 받으면 다 잘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한석봉이 보세요. 싫어서 온 애를 불 꺼놓고 떡을 썰고. 반복 노동이에요. 요새 반복 노동이 3D 아닙니까. 창의성을 가르쳐야죠. 얘는 그것 하니까 안 되겠다. 요새 글자 똑바로 써 가지고 뭐 할거에요(웃음)? 여기에 근대 교육의 목표가 있다. 예전에는 똑같은 코스에 그저 가르쳐주는 것 배우고 원하지 않는 것 열심히 배우기만 하면 됐다. 옛날 어머니들이 가장 말한 것이 아들 5명 낳아서 몽땅 등과시켜야 한다. 과거에 합격시키는 것, 그것이 당시 어머니들의 일이었기 때문에 지금이나 옛날 어머니나 얘가 뭘 배우는지 관계없이 과거에만 합격하거라. 이건 공부가 아니라 취직시험이에요. 옛날 어머니들이 5자등과가 어머니들 교육의 이념이었듯 그렇게 많은 세월이 지났는데, 열심히 가르치는 어머니들은 자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옛날 과거 시험을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퇴계 선생이 조카들이 있는데 당시 데려다 놓고 가르쳤다. 인성 교육을 시켰어요. 과거에 합격하는 것을 가르쳐준 게 아니에요. 그런데 이미 그 시대에 학원이 있어서 학식은 없지만 과거에 합격시켜 주는 과외 선생님이 있었다. 사람이 되는 인성교육을 시키는데 친척이고 유명한 학자니까 배우다가 마지막에 다 도망가서 다른 데 가서 배워요. 얘들아, 퇴계 선생에게 배우다가는 아무것도 안되겠다 해서 과거급제용 교육을 받았다. 맞춤형 과외를 한 거에요. 퇴계 선생도 과거보려는 사람에게는 퇴계 선생이 아니고 나쁜 선생이었다. 학교 선생님하고 과외 선생님의 차이는 학교 선생님은 월급을 받고 어쨌든 공교육을 하고 있지만 학원에서는 입시용으로 가르친다. 결과적으로는 왜 배웁니까, 하는 점에서 분명하다. 지금의 교육은 애들이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특성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학교에 가도록 가르칩니다.


인성교육과 성적 지상주의 사이에서

드라마 <공부의 신> 보니까 어느 학교 들어갈 애들만 모아놓은 거에요. 모든 인생을 학교에 들어가는 시험에 걸지, 어떻게 사느냐? 친구가 뭐냐? 요즘 아이들 기독교 교육하고는 반대인 것이, 제 손녀딸이 있는데 아버님 얘는 바보래요. 시험 치면 내신성적 때문에 다들 노트 안 빌려주는데, 얘는 전부 돌려서 주니까 손해 본다. 누가 더 똑똑한 거죠? 내주는 애가 바람직해요 안 보여주고 내신성적 올리는 애가 나아요? 인간성은 얘가 훨씬 낫지만, 사회에서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노트를 안 빌려주는 애가 성공한다는 면에서 사실 문제죠.

한 마디만 더 할께요. 내가 왜 이렇게 가까운 얘기 하냐면 현실에서 흐르는 얘기 하려는 거에요. 이론적인 얘기는…. 손자와 손녀가 같은 반이에요. 한 애는 만화책만 봐서 굉장히 상상력이, 나하고 대화가 돼요. 그런데 손녀는 정말 이름난 수재에요. 다 알아요, 누구라고 하면. 지금 최고로 치는 학교에서 반장 해요. 얘는 정말 독똑해. 토플 쳐도 하나만 틀려요. 그런데 하나는 창의력이 있으니까 대학 들어가기 조금 어렵겠죠. 그런데 대학은 쉽게 들어가지만 얘는 나랑 대화가 안 돼. 누가 나한테 와서 두 애들 중에 어느 쪽을 추천해 주시겠습니까, 하면 얘처럼 되라고 할텐데. 그게 간단치 않은 거래요. 얘가 쟤처럼, 쟤가 얘처럼 됐으면 하는 것에 대답을 할 수가 없어요.

이런 딜레마에서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여기 모인거지, 이상적인 얘기는 다른 사람한테 하는 거지 손자에게 하는 건 아닙니다. 사회에서 많이 하는데. 창조력이 어떻고 하는데 당장 얘가 대학을 못 다니고 좋은 대학을 못 나오면 앞날이 깜깜한데 창조교육, 인성교육 따지느냐. 그래서 이 똑똑한 부모들이 다 알면서도 미친듯이 한 사람이 뛰면 다 뛰는 거에요. 알면서도 그렇게 뛰지 않으면 처지니까. 브레이크가 들 정도의 질주가 아니다. 차가 파열될 정도다. 이것이 여러분들이, 이재철 목사님은 아실지 몰라요. 속세를 떠났으니까(웃음). 저는 상당히 여러분들과 대화하면서 이 시간에 한번 찾아보자구요. 그래도 창조다, 창조는 다른 애들 하라고 하고 얘는 밥을 먹어야 되니까 입시 하자. 이게 딜레마인데 교육 문제 내놓고 계속 얘기해 봅시다.

(사회자) 이어령 선생님께서 좋은 말씀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재철 목사님이 질문받을 차례입니다. 톡 까놓고 얘기해서 서울대 가야 사회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얘기하지 않습니까. 이 현실이 근본적인 문제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도 이어령 선생님은 서울대 나오셨고, 저하고 이재철 목사님은 서울대학교 안 나왔습니다. 이재철 목사님께 여쭙겠습니다. 시험이 꼭 필요합니까? 핀란드는 16세까지 시험 없어도 교육경쟁력 1위인데요. 학벌, 제도, 이런 문제까지 합쳐서 이어령 선생님이 이재철 목사님께 해답이 있을지 모른다고 했는데 기대가 됩니다.

▲ 이재철 목사. ⓒ이대웅 기자
(이재철 목사) 먼저 서울대를 졸업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건 현실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서울대학이 제일 좋은 학교이고 서울대학교 나오면 사회적으로 안정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난번에 삶에 대해서 우리가 이야기할 때도 성공을 성공이라고 할 때 어떤 길에서의 성공이냐. 황제의 길이냐, 예수의 길이냐? 그리스도인이 여기에 대한 분별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평생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공이라고 말할 때 황제의 길에서 성공인가, 예수의 길에서 성공인가. 이 부분이 늘 명확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출신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확률은 참 큰데 우리가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한국에서 대재벌 그룹은 차치하고 대기업들 중에서 서울대학교 출신들이 창업한 기업이 몇 개나 되는가. 아주 극소수지요.개척정신, 인생의 도전정신, 모험정신, 이런 데서는 서울대 출신의 성공 확률이 얼마 안 된다고 볼 수 있지요.

또 2차대전이 끝나고 1948년 우리나라가 정부 수립을 한 뒤 과도기 때 윤보선 대통령, 최규하 대통령을 제외하면 제 기억으로 현재 이명박 대통령까지8분의 권력을 행사한 대통령 계셨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8분 가운데 서울대 출신은 6·25 전쟁 와중에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신 김영삼 대통령 한 분 뿐입니다. 서울대학교를 나온다 할지라도 사회를 이끄는 리더십을 갖는 것은 아니다. 더더욱 아까 말씀드렸듯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참된 교육의 목적이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게 함으로써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라면, 서울대를 나온다고 해서 그 삶이 정말 행복한가? 아닐거란 말이죠. 서울대에 나오면 성공 확률이 높다는 세속적인 기준으로 그리스도인마저 함께 생각하는 것은 조금 분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합니다.


교육 천국 핀란드의 명암(明暗)

두 번째로 핀란드 교육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저도 스위스에 있을 때 핀란드에 한 열흘 가서 핀란드를 제 눈으로 직접 봤습니다. 핀란드는 실제로 우리나라 교육 과정에서 중3 졸업할 때까지 시험을 치지 않고 성적표도 없습니다. 정말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사립학교도 없는 상황에서 교육을 배우니 교육 천국입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애들을 방관하지 않습니다. 그 나라에서는 유치원에 입학하면서부터 예능, 체능은 말할 것도 없고 언어, 도덕, 윤리, 자연 환경까지 가르칩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한명씩 면밀하게 분석하고 관찰합니다. 그래서 이 학생은 무엇을 잘 하고 이 학생은 어떤 적성이 있고 어떤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평가서를 써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그대로 그 정보가 넘어갑니다. 그러면 초등학교 선생님은 유치원에서 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한명씩 체크하지요. 그리고 중3 과정이 끝나면 고등학교로 진학하는데 핀란드에서 고등학교 진학률은 55%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상업학교나 적성에 맞는 대로 선생님들이 배치합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의교육 목적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있게 살기 위해 필요한 지성과 인성을 배양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바른 사람이 되고 사회인으로 살아가는데 굳이 학교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안 거치게 합니다. 다 대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우리나라는 3년으로 고정돼 있지만 그 나라는 2-4년으로 개인마다 틀립니다. 선생님이 다 결정해 줍니다. 그리고 대학교를 들어가는데 작년 대학교 진학률이 57%입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55%만 가고, 그 중 57%만 가니까 33%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대학생 때부터 정부가 생활비를 지급합니다. 등록금이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독일이나 영국으로 유학 가면 그 학생들에게도 생활비를 송금합니다. 한 마디로 천국이죠. 교육 천국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사회가 저절로 되지 않았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핀란드는 한때 전 국민의 100%가 그리스도인이었던 대표적인 개신교 국가였습니다. 바로 우리 자식들에게 사람됨을 가르치는 참된 교육,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우리 자식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자 하면 영성 교육까지 포함돼 있었죠. 하나님을 모르고는 사람이 될 수 없으니까. 환경은 우리가 무조건 만들어 주고 그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돈은 얼마가 되든 우리 각자가 부담하자. 그래서 소득이 많은 사람은 최고 80%까지 세금을 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크리스천 1천만명이 세금 80%를 내더라도 세상을 이렇게 한번 바꾸자고 하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부 이기적인 생각에 그리스도인들마저 사로잡혀 있고 세속적인 가치관으로만 사람들을 키우려고 하니까 해소될 수 없죠.

핀란드를 천국으로 생각하고, 교육에 관한 한 천국임은 틀림없는데,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 나라 백성들 100%가 크리스천이었을 때 서로 합의해서 신앙으로 그런 나라를 만들고 지금도 그런 나라의 외형은 견지돼 있는데 그들이 신앙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태어나면 그저 세례 받고 결혼식 때, 장례식 때만 가는 형식적인 크리스천이 돼 버렸습니다. 지금 핀란드는 전 국민의 50%가 1인 가정입니다. 핀란드는 호수가 18만여개 있는데 다들 호수마다 떨어져서 왕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조울증에 시달립니다. 그러니 알콜 중독이 많죠. 그런 교육 천국에서 최고의 교육을 시켰는데, 결과가 사람들이 모여서 오손도손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 그럼 우리 생각해 봐야 할 부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핀란드 교육을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그리스도인들이 결심하고 추구해야 할 바를 핀란드에서 배울 수 있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핀란드는 그리스도인들이 교육 천국을 만들긴 했는데 그 교육 천국에서 영성을 잃어버릴 때 그들이 전혀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한다는 반면교사(反面敎師)인 동시에 전면교사입니다.


서울대 출신 아니어도 뭘 하든 불이익 받은 적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러면 입시제도 문제를 어떻게 탈피할 수 있겠는가. 저는 그리스도인 부모들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아까 선생님께서 창의적인 삶, 창의력 말씀하셨는데, 똑같은 말이지만 평소에 독창적인 삶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두 독창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화가도 상상력으로는 10명 이상의 얼굴을 그리지 못합니다. 반드시 모델이 있어야 합니다. 독창력의 한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60억 인구를 모두 독창적으로 만드셨습니다. 그 독창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직선 위에 줄을 세워서 1등, 2등 하지 않습니다. 원 위에 서게 해서 동등한 위치에서 키우십니다. 내가 독창적인 방향으로 나의 삶을 살면 같이 자녀를 학교에 보내더라도 오늘날과 같은 입시제도 하에서 성적의 노예 내 자식을 열등감을 갖게 하지 않는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이라고 하는 소년이 골리앗과 맞설 때 사울이 갑옷을 입혀주고 투구도 씌워주고 칼도 줬습니다. 마일 다윗이 이것을 차고 왕의 흉내를 내려고 했으면 단칼에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입고 보니 내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벗었습니다. 베들레헴 양치기답게 독창적인 자기만의 방법, 양을 치면서 맹수를 물리칠 때 쓰던 물맷돌 하나로 물리치는 거거든요. 독창적인 삶을 살면 얼마든지 학력 중심의 풍토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다.

김종찬 선생님하고 저는 서울대 출신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실제로 외국어대 불어과 나왔는데 제가 사회생활 할 때, 사업을 할 때, 출판을 시작해서 경영할 때, 한 번도 서울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제게 불이익을 준적도 없고, 그것 자체로 어떤 경쟁에서 낙오된 적도 없었다. 오히려 항상 제 동기들보다 어떤 면에서는 한 발 더 앞서 갔습니다. 그 이유가 제 어머니께서 저에게 저만이 살 수 있는 인생을 살지 않으면 평생 남 따라다니다 인생 못 산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제 삶을 살게 하시고 제 눈을 열어주신 덕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이 세상이 다 간다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자식에게 주신 독창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준다면 똑같은 학교에서도 얼마든지 자식들을 밝고 건강하게 키우지 시험의 노예로 자식들을 병들게 하는 일에서 탈피할 수 있습니다.

(사회자) 다만 한 가지, 핀란드에서 유치원 선생님이 한명 한명 지도하는 일만큼은 부러운데요.

(이어령 박사) 말씀하신, 좋은 학교 나와야 되느냐. 확률 문제죠. 보다 안전하다. 사람들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안전한 데 거는 거죠. 나는 원하지 않는데 남들이 원하면 할 수 없다. 안된 얘기지만 어머니들이, 여성들이 질투심이 있잖아요. 입학 시즌 되면 자기 자식 위해서 하고 싶지만 주위에서 일류대 가면…. 자기는 얘가 정말 일류대학 애들보다 꿀릴 것이 없는 걸 알면서도 사회는 늘 줄을 세우기 때문에, 예수님은 줄을 안 세워도 다른 사람들은 줄을 세웁니다(웃음). 이런 아픔 속에서 대안이 하나 있다. 여러분들께서 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애들 들볶아서라도 어쨌든 애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회적으로 자기 구실 할 수 있도록 사랑의 힘으로 너에게 학력을 만들어 주마. 나는 학력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여자를 사귀는 데도 학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좋은 대학. 요즘은 어느 과외 선생님이냐에 따라서, 정보가 없으면 안 된다. 누가 족집게냐. 경쟁을 하다 보니 학원 가느냐 안 가느냐로 얘기하지만, 지금은 학원 가고 안 가고가 아니라 같은 학원이라도 어디에 있느냐. 강북에 살아도 몰리면 강남으로 가야 한다. 이런 얘기 있잖아요. 너 아직도 담배 피냐? 아직도 강북에 사냐? 다음 거는 차마 말 못하겠는데, 아직도 누구랑 사냐? 예수님을 따를 때도 시선을 안 따를 수 없었어요. 예수님 따르던 사람은 사회의 처진 사람들. 불이익을 받던 사람, 세리, 창녀들 밖에 따르지 않았어요. 그때 일류대학은 예루살렘에 있었지 나사렛에 있지 않았다. 저런 촌꾼이 예루살렘에 당나귀 타고 나타났으니 사람들이 인정했겠어요?

실패할 각오 해도 그 길이 맞다면 택하라… 예수님처럼

그런데 인정했잖아요. 실패해도 성공했잖아요. 실패할 각오를 해서라도 그 길이 맞다면 택하라. 실패했기 때문에 2천년을 살았지, 그 당시 성공해서 예루살렘에서 가장 큰 회당 맡았다면 그렇지 못했다. 제가 괜히 이런 얘기 하는 게 아니라, 에디슨 보세요. 1+1=2를 몰라서 쫓겨났잖아요. 그때 그거 알던 사람들 지금 기억하세요? 그런데 쫓겨났기 때문에 훌륭하고 쫓겨나지 않아서 훌륭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때 에디슨 어머니가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없었다면 영원히 탈락했을텐데. 심지어 알을 까는 것을 보고 품어주면 알을 깐다니까 닭장에서 알을 품고 있었다. 한심스러워요. 그걸 어머니가 실험기구 사 주고 다 해줘서 어머니가 교육시킨 거에요.

여러분들이 애가 좋은 대학 갈 자신 없다면 일치감치 포기하고 걔를 독특하게 훈련시켜라. 부모들이 교육하시는 거에요. 그게 사랑입니다. 유태인들이 노벨상을 휩쓸고 전세계를 주름잡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어머니들 교육이에요. 우리는 학교 다녀오면 이러죠. 싸움 안 했어? 친구하고 잘 놀았어? 우리가 인성교육, 인성교육 하지만 우리 교육이 기본적으로 인성교육이었어요. 매 맞는 놈이 발 뻗고 잔단다, 아직까지는 이렇게 가르치죠. 선생님 말 잘 들었냐? 이게 또 중요해요. 아까 얘기한 대로 교육이 네가 뭘 배우려고 하느냐가 없다. 제 생각과 다른 남의 생각을 자꾸 쑤셔 넣는다.

그래서 다 아이폰 찾아다니는 거에요. 그래야 먹고 살아요 어쨌든. 근데 왜 스티브 잡스가 안 나오는 거야? 똑같은 스마트폰인데 아이폰은 사람 마음을 잘 읽는 거야. 이 능력 학교에서 안 가르치는 거야. 남이 괴로워하는지, 어떡하면 남의 마음을 치료하는지 학교에서 안 가르친다. 유명한 수학자가 당신이 어떻게 그런 신기한 것에 힌트를 얻었습니까. 나는 내가 공부한 게 아니고,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학교 다녀오면 학교에서 뭘 질문했니?뭘 배우려 했니? 뭐가 궁금했니? 학교만 돌아오면 그걸 물으셨다. 모든 것에 의문을 보고 풀려고 했다. 여러 어머니들께서 자꾸 창조적인 교육 상상력 교육 시키면 대학 안 나와도 벤처기업 해서 룰륭한 사람 되는데, 어머니들이 학교 탓 하지 마시고 어떻게 가르칠 거냐에 신경을 써라.


아이폰 비결은 사람 마음 읽는 법… 학교에서 안 가르쳐

▲석학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주의를 집중하면서 듣는 청중들. ⓒ이대웅 기자
제임스 와트 증기기관 어떻게 만들었나. 백이면 백 모두 옛날 교육 받아서 주전자 뚜껑 보고 만들었대요. 다 그렇게 듣고 계시죠. 엉터리 얘기. 제임스 와트 전에는 증기기관이 없었어요? 있었어요. 양수기. 광산에서 물을 퍼내야 하는데, 이게 잘못 가르친다는 거에요. 주전자 뚜껑 보고 했다고 하니까 공부 안 하고 뚜껑만 보고 다니는거에요. 이렇게 가르쳤어요. 야,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 만들어서 산업혁명 일어났다는데 그 전에는 증기기관 없이 뭘로 했다니. 당시에 백대나 있었는데, 뉴커먼의 증기기관 수리 도중에 이렇게 개량하면 좋겠다 해서 개량한 거에요. 그러면 뉴커먼 전에는 증기기관 없었을까? 아 있네요. 특허는 이 사람이 냈네요. 그 이전에는 없었니? 막 찾아보다가, 있었네요. 2천년 전에 헤론이라는 사람이 그림까지 그려놨네요.

2천년 전에는 왜 뉴커먼처럼 못 만들었다냐? 주전자 뚜껑은 생각 안 해도 돼요. 당시에 만들었지만 노예 제도 있어서 인력이 얼마든지 있어서 수증기 떼서 할 수가 없었는데 노동력이 귀해지고 천한 일 안하려 하니까 누구도 안 하려 하고 말 먹이가 올라가니까 이걸 마력이라는 말도 이 사람이 만들었어요. 전부 말로 하는데 말 먹이값이 올라간 거야. 도저히 말 먹이값 대서 물을 퍼냈다가는 석탄을 아무리 캐도 안 되니까 결과적으로 기계로 했다. 이렇게 추리를 함으로써 주전자 뚜껑을 보고 했다는 사람하고 말 먹이값이 올라가니 기계가 훨씬 싸서 팔렸고 개량해서 수천 개가 팔렸다. 여기서 산업혁명이 왔다. 벌써 노동력이 보세요. 노동력 대신 기계가 할 수 밖에 없구나. 노예가 없으니까, 자유 평등.

벌써 한 시간만 왜, 왜를 열 번만 얘기하면 서울대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서울대학 들어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묻는 습관을 어릴 때부터 길러야 되는데 누가 ‘왜’를 죽였습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죽인 겁니다. 지난 시간에도 했잖아요. 애들이 왜, 왜 하잖아요. 너무나도 당연한 걸 물으니까 짜증나서 생각해 보는데 자기도 모르잖아요. ‘왜’를 누가 죽였냐. 아버지 어머니가 물으면 자꾸 잘한다고 해야 하는데 쓸데없는 거 묻는다고. 이게 부모 교육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오늘 이 순간 모든 사람들이 나의 교육법을 바꿔서 새로운 거 해 보겠다고 하면 학원도 문 닫고 일류대학 나와도 별 수 없다는 통념이 여러분들 머리에서 나오는데 이게 안 됐다. 옛날만 해도 입시가 4지선다형. 연필 굴리는 애들도 있고, 그래서 맞선 볼 때 두 명으로는 안 된다는 거에요. 네 명은 있어야 고른다나(웃음). 책은 재미로 봐야 하는데 논술 치려고 책 보니까 읽는 재미를 잃어버렸다. 이것도 안 되니 입학사정관. 이제 학원에서 입학사정관 면접을 가르친다. 못 말린다. 마귀를 몰아낼 순 있어도 못 죽인다. 마귀를 몰아내려면 발붙일 수 없게 하는 훈련 해야 하는데 오늘부터 하나하나 따져 가면서 이런 경우는 이렇게 하자, 납득이 되면.

서울대학 들어간 사람은 주로 암기력이 많고 참을성이 많아서 졸려도 잘 참는 사람들. 4당5락. 누가 덜 자느냐 경쟁인데 불면증 걸린 사람이 좋죠(웃음). 입학시험이 뭘 봤냐. 아까 나보고 서울대학 다녔다고 하는데 저는 오늘날과 같이 이런 입시 풍토면 절대 서울대학 못 갔어요. 저는 전 과목을 못 하고 밤에 잠이 오면 그냥 자요. 요즘 같이 대학 1학년 과정 했으면 절대로 이 나이에 이렇게 여러분들 모아놓고 강연 못했어요. 별로 안 배워서 내 머리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GPS가 있어서 요새 다 길 잃어버리잖아요. 자기 머리로 안 해서 그렇다. 완전히 GPS가 우리를 망치듯 학교 선생님이 훌륭할수록 우리를 죽인다. 어쩌면 바보 같은 선생이 잘 가르치는 거죠. 첫째 용기를 주고, 틀린 소리만 하니까 둘째 자기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생이 뛰어나면 다 받아적기만 한다. 선생이 어리숙하면 자기가 공부할 수밖에 없다. 상대적이다. 나는 독서, 도서관, 친구들 이야기, 우리 형제가 5형제여서 형들하고 얘기했어요. 대학생이랑 초등학교도 안 갔는데 대화를 했다. 대학생 수준의 사람들과 어렸을 때부터 얘기하다 보니 머리가 발달하지 않을 수 없다. 어려운 책 읽으니까 모르는 부분이 많으니까 내가 추측해서 알아봤다. 사전이 있었어요? 독학을 시켜도 부모님이 잘 가르치면 어떤 분은, 자연과학은 그렇게만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인문학은 그렇다.

아이의 적성을 알아서, 부모들이 이게 결론이에요. 얘가 시켜보니 도저히 학문할 애는 아니다. 그러나 장사도 잘할 거 같고 대인관계도 좋으니 학문을 하려면 몰라도 쓰고 읽고 주판해서 셈만 따질 수 있으면 나머지는 별 지식 없어도 산다. 그렇게 해 놓고 애를 학원에 보낼 거, 대학 수업료 바칠 것을 미리 계산해 보세요. 그 돈을 한 번에 은행에 넣으세요. 그래 가지고 얘는 좌우간 학교 못 다녀도 이만큼으로 장사시키든 뭐 하든 공증인 걸어 가지고, 한꺼번에 주면 다 쓸테니까. 설령 다 써도 탕자는 돌아옵니다. 그러면 인생 다 배워요. 그걸 만들어 가지시고 얘가 학문을 하거나 대학에 가는 데 너무 소질이 없으면 애 앞으로 자립할 수 있는 돈을 주세요. 그러면 애도 편하고 가르치는 사람도 편해. 제가 권하니까, 절대 재치로 하는 얘기가 아니에요. 문제는 자기 애가 다 천재인 줄 알아. 비상하다고 하는데 보면 주위 애들보다 더 못해. 음악이나, 하다못해 제기차기라든지 잘하는 것 대학 과정까지 들어갈 돈 적립해서 공증해서 줘라. 그러면 아주 행복할 것 같애요.

(사회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사이에 학교 문제점 홈스쿨링 교육의 문제점 다 나와 있습니다. 질문 있습니까.

(청중 질문) 교사로도 있어봤지만 공교육이 붕괴되고 있는데…

(이어령 박사)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시인이나 소설가는 다 아는데 안 나온 사람들은 모른다. 시인이 그렇게 많은데도 말이에요. 4천만이 전부. 끔찍하지 않나? 교과서에 실린 사람만 알고 안 실린 사람은 몰라요. 이런 게 시대에 뒤진다는 거다. 이렇게 되니까 빨리 공교육이라고 하는 것을 획일적으로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평균적인 공부를 바꾸자. 핀란드 얘기 나왔다. 제도적인 게 아니라 콘텐츠를 알아야죠. 핀란드가 OECD에서 이해력 1위입니다. 국어 교육 엄청 시킵니다. 어떻게 하냐면 방과 후에 둘이 짝을 지어준다. 한 애가 그 민족의 서사시나 문학을 읽는다. 상대는 듣고. 그리고 나서 거꾸로 해보고. 그러면 한쪽 애는 이 대목을 강조하는데 다른 애는 다른 부분을. 그래서 쟤는 이렇게 이해하네? 그 다음엔 둘이 함께 읽어요. 이렇게 해서 이해도의 공약수를 늘려갑니다. 꼭 방과 후 30분씩 해요. 이걸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해서 논술이 아니라 초등학교마다 30분씩만 시켜주면, 영어도 잘할 거에요. 이해력이 높아져서, 국어도 못하는데 어떻게 영어 잘하겠나. 이해력이 있어야 토론이 되고 대화가 되고 그래야 민주주의가 됩니다.

그런 극히 일부의 교육만 했어도 오늘날 소모적인 정치 논쟁 없다. 남의 얘기를 안 들어요. 부부싸움도 그렇고. 남편이 9시에 들어왔다. 그럼 아내가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냐고 하죠. 그러면 늦게 들어왔냐 일찍 들어왔냐 가지고 막장토론을 해야 하는데, 해준 게 있냐 없냐로 넘어가요. 그러다가 사준 시계가 고가냐 아니냐로.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잘하면 부부싸움도 화기애애하게 합니다. 안 그러면 기분이 되게 나쁘죠. 왜 늦었냐 갖고 싸우다 엉뚱한 거 갖고 싸우고 있죠. 그런데 사교육이나 공교육이나 똑같은 책 갖고 똑같은 시험 가르친다. 뭐가 공교육이고 사교육이냐? 여러분들 옛날 얘기 한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하는데 우스운 얘기도 하고 하는데 조용히 나만 빤히 본다. 얘들이 왜 그러냐? 학교 가서 하던 게 몸에 배서 그래요. 자면 혼나고, 다른 데 보면 혼나니까 선생님 보면서 딴 생각 하는 거에요. 오늘 학원 숙제가 어떻고.

이게 여기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에요. 내 민족 내 국가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도 여기에 달렸어요. 그 영악한 일본, 1백년 먼저 근대화된 나라가 옆에 있는데. 우리가 정말 기독교인으로서의 가치를 높이자. 그런데 현실은 주판을 잘하는 사람이 이긴다. 그러니 어떻게 넘어설 것입니까? 최소한 기본적인 것들은 해야 하죠. 쓰고 읽고 주판하고. 그러면 공교육이 점점 흐려지기에 앞으로는, 앞으로 21세기에는 얼마든 학교 아니라도 지식 얻을 수 있습니다. 다만 학교가 왜 필요한가. 사회성을 기르는 곳이죠. 독학한 사람은 사회성이 없다. 그러나 일류든 뭐든 대학 나온 사람은 안 나온 사람과는 다른 거에요.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의 지식을 나누고, 그게 지식인들 사이의 훈련이죠. 나머지는 걱정할 것 없다.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어쨌든 우리나라에서는 학력이 필요하지만 말입니다.

내가 이번에도 장동건 주례할 때 얘기한 것이 애 안 낳는 부모들이 많다. 너희들이 결혼하는 것이 얼마나 결혼 안하는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는지 아느냐? 한국에서 제일 몸매 좋은 사람도 애 낳는데, 당신들은 뭐 걱정돼서 애 안 낳냐? 주례하러 가서 저출산 강연을 했죠. 시장에 가서 물건 사고, 음악 듣고, 도처에 교육이 있습니다. 학교만 교육이 아니죠. 학교 못간 게 치명적이지 않다는 걸 안다면, 그만큼 사회성만 길러준다면, 여기(양화진문화원) 좀 좋은 학교입니까? 대학에서 이만한 강의 들어요? 여기 오는데 등록금 받나? 어딜 가든 교육장 있는데, 학교만이 교육장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스쿨에 디를 붙이면 디스쿨링(Deschooling)이 됩니다. 탈학교(脫學校), 그런 책을 보세요. 그걸 보면 앞이 보입니다. 어떻게 학교를 벗어나 진정한 교육을 하느냐, 이것을 가장 외국에 잘 돼 있는 선진국의 예를 갖고 쓴 거에요. 그러니 절대 절망하지 말고, 앞으로 적어도 10년 후에는 어떻게 될 거라는 걸 알아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얘긴데, 다음에 하겠다, 아무래도 (빨리 끝내라는) 사회자 눈치가 수상해서(웃음).

(사회자) 공교육 붕괴에 대해 목사님은 하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이재철 목사) 공교육 붕괴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아까 처음 말씀드렸듯 학부모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은 수요가 공급을 결정합니다. 학부모들이 관련 입시제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지금의 제도는 바뀌지 않겠죠. 크리스천 부모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두번째는 학교 교사이라고 하셨는데 믿는 분이시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들고 아프리카 가서 선교하지 않지 않습니까. 늘 강조하지만 한 방향으로 가면 지구는 둥그니까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옵니다. 일반 교사라면 모르지만, 크리스천 교사라면 자기 학교가 선교지라 생각해야죠. 거기서 이렇게 공교육이 무너졌다고 생각되시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줄지 고민하셔야죠. 제가 감명깊게 봤던 영화 중에 <죽은 시인의 사회>가 있습니다. 그 선생님은 다르잖아요. 아이들에게 인간성을 주고, 뒤에서 불이익 당하면서도 인격적으로 길러냅니다. 크리스천 부모는 부모대로 새로운 인식을 갖고, 교사들은 교사들대로 직업이 아니라 소명인으로서 교육장을 선교지로 삼는다면 소망이 있다고 봅니다.

(사회자) TV를 보니 어떤 어머니 나오셨는데 애가 어려서 요리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계속 생선 등 써는 것을 교육시켰고, 결국 19살에 학교 그만두고 일본 유학갔다. 옆의 애는 머리를 자꾸 만지는데 미용사가 꿈입니다. 그렇게 키우는데 저 집이 앞으로 굉장히 성공하겠다 생각했습니다. 요새 셰프, 셰프 하면서 난리잖아요. 강남 미장원에 머리 한번 하면 어마어마하잖아요. 그런데 엄마가 너무 밝고 씩씩하게 교육하는 거에요. 그런 엄마가 선구적인 교육자다.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느냐 여기서 한국 교육이 결정된다.

뒷부분은 사실 사족 같은 토론이지만 이게 현실입니다. TV 출연하는데 기러기 아빠에요, 애들 돈 보내주기 바빠요. 이게 정상적입니까? 대중 앞에서 재롱 떤 돈을 기러기 엄마에게 돈 보내주는 걸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부부는 죽으나 사나 함께 살아야 부부인데, 우리가 중동으로 땀 흘려 가서 돈 벌던 시절도 아닌데 외국에서 아이들에게 목숨 걸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지난 주에도 얘기했지만 이것이 가족 제도에 대한 도전 아닌가요.

(이어령 박사) 지난 주 했던 가족의 붕괴오늘의 문제가 밀접합니다. 교육은 일단 가족에서부터 이뤄지죠. 제가 만날 얘기하는 것은 제 얘기인데, 어렸을 때 어머니가 아프면 옆에서 책 읽어주고 하셔서 책 읽기 시작했어요. 어머니가 책 읽지 않으셨다면 여러분 앞에서 이런 자리도 없었습니다. 사실 근원을 쫓아가 보면 태내 교육도 하지만 탄생 순간부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말만 이러는 것이 아니라 창조 학교 만들어서 명예 교장 하고 있잖아요. 세계에서도 경쟁력을 높이려면 임신해서 애가 태에서 자랄 때부터 건강하고,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쾌적한 환경을 주자. 여기 나오면 공해도 많지만 태내는 혼자 있으니. 혼자 있는 완벽한 어머니의 아기 집 안에서는 최고의 환경을 주자.

요새는 전부 해서 스캔 되니까, 놀라워요. 모차르트 음악 들려주면 애가 막 좋아서 뛰어요. 베토벤 같은 우울한 거 들려주면 애가 막 겁에 질려요. 어린 애가 어머니 목소리 다 알아들어요. 지금까지는 무지해서 그랬지만 애한테 최고의 환경 만들어서 3살 때까지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서울 애나 시골 애나 경쟁이 시작되기 전에 책임이 애들한테 없기 때문에. 그 집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요? 운명처럼 지어진 공간에 떨어진 아이들이 적어도 3살 까지는 우리가 책임져야 된다. 그래서 3살 마을을 만들어서 세계에 없는 걸 하는데, 애를 낳으면 먼저 회원이 돼요. 한달 후면 저울 가져가서 달아줘요. 매일 아르바이트 하는 거에요. 저울에다 어린 아이 놔요. 그러면 한달 동안 발육상태 체크하고 아버지가 몇 번 안아줍니까, 잘 때 불 켜고 잡니까, 30항목 전국 어머니들이 한 달 데이터가 다 들어가면 전문가들이 다 비교해서 서양 애들과 다른 우리 아이들의 특성을 체크합니다. 엄마가 빨간 옷 입으면 심장이 더 뛰어요. 장난감 자꾸 주면 의존증 생겨서 영국 유치원에서는 장난감 안 주는 걸 간판에 걸어요. 그래서 대학생 돼도 인형 안고 자고 그러잖아요.

어머니들이 무통분만 한다고 수술 받고 하면 이상한 성적 도착증이 걸려요. 요즘에는 좋은 사주 보고 그 순간 되면 째서 꺼내죠. 이런 것들이 우리 가정교육을, 어머니가 애를 가졌을 때 태교 안 한다 해도 그 때부터 일생을 좌우하는 치열한 삶의 경쟁이 시작됩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세 살 마을 만들고 정상적으로 키워주면 결과적으로 얘가 다음에 반드시 한 사람의 몫으로 클 수 있는. 세 살까지만 해도 정상적인 아이가 되는데, 세 살 이전에는 안 돼요. 아직 성장하고 독립하기 전이라. 그래서 세 살 마을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생각하면 겸허히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기도가 중요합니다. 유명한 기도인데요 주여, 내가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을 변하게 하는 용기를 주옵시고. 내가 변할 수 있게 하는 일인데 용기가 없어서 못하는 것을 용기를 주시고. 변할 수 없는 것을 내가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주옵시고. 내가 변해질 수 없는 것을 내가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하시고 변할 수 있는 것은 변하는 용기를 주시고 제 힘으로 못 하는 것은 겸허하게 받아들이자. 변하는 것과 변하지 못하는 것을 분별할 지혜를 주소서. 우리는 변할 수 없는 걸 붙잡고 있다. 변할 수 있는 건 놔둔다. 거꾸로 한다. 애를 보고 이건 안 된다고 생각하면 겸허히 받아들이자. 용기를 가지고, 끝까지 혼자라도 좋으니까 교육시키려면 무엇이 할 수 있는 일이고 무엇이 안 되는 지혜를 주옵소서. 그게 교육이 돼야 한다.

그 때는,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때는 누가 해 주죠?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학교를 정 안될 때 교회. 학교에서 절대 안 됩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믿는 분이시라면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되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지, 과학으로 다 할 수 있다고 해서 오늘날 이 모양이 된 거 아니에요. 인간이 할 수 있다는 오만 때문에, 이런 오만함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좋습니다, 저는 못합니다, 분별을 알면 우리 아이들은 하나님이 보내주셔서 하나님 은총으로, 어떻게 해서든 살아요. 어머니 아버지 없으면 애들이 죽는 줄 아니까. 기러기 가족은 가족을 붕괴시키고 아이를 힘들게 하고 남편을 못 살게 한다. 남편이 돈 버는 기계냐. 아들이 아버지보고 전화 거는데 아버지가 너무 안돼서 아버지, 하고 전화 거니까 우리 아버지들이 교환수에요. 아버지가 뭐라고 해요? 어, 돈 떨어졌냐? 그게 아니라 아버지 얼마나 외로우십니까? 너 술먹었냐?(웃음) 이게 부자 지간이에요. 기러기 아빠가 아니라도 기러기 아빠에요. 이게 어떻게 가정교육 통해서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어머니는 어머니답게. 나는 아버지 어머니처럼 될 거야, 먼저 우리가 교사가 되면 얘는 절대 학교 교육에서 실패해도 한 인간으로서 가족 보고 자랐기 때문에 믿는다.

가족은 쉬는 곳이고 믿는 곳이고. 생존 경쟁 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비로소 쉬어요. 쉴 곳이 여기밖에 없어. 치열한 싸움에서도 집에 들어오면 괜찮아. 사실 이혼을 많이 하지만, 아내와 45kg 날씬해서 결혼했는데 애 둘 낳고 80kg가 됐다. 전화해서 장모님 리콜해 가세요, 계약 조건이 다릅니다(웃음). 이러지 않잖아요. 가족은 받아들여 주는 곳이니까. 신체 장애자들도 받아주잖아요. 미래에 대한 믿음이잖아요. 여기서(가족) 모델 찾으니까, 나는 형님처럼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될래. 아버지가 정 안 좋으면 난 절대 아버지처럼 안 될래. 얼마나 교육적으로 좋아요? 이것도 교육이다(웃음).

▲자리를 가득 메운 청중들은 강연이 끝날 때까지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강의를 청취했다. ⓒ이대웅 기자
오늘 토론에 기러기 가족 얘기 나와서 얘기인데, 가족이 붕괴하면 공교육 붕괴가 아니라 교육은 끝나는 거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전부 가정교육 밖에 없었는데 인간하고 똑같이 생긴 크로마뇽인이나 네안데르탈인, 인간하고 똑같습니다. 옛날에 사라진 인종인데 똑같다. 왜 망했는가. 교육받을 기관이 없었어요. 부모가 일찍 죽어서 애들이 학습해야 하는데 교육받을 기관이 없었어요. 그게 가장 네안데르탈인 멸망 이유 중 첫손에 꼽는다. 오늘 부모로부터 교육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인류 자멸을 가져온다. 토론에서 여러 이유 있겠지만 아무리 교육이 중요하다 해도 가족이 붕괴돼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기러기 가족만은 안 된다.

내 딸이 검사인데 변호사 됐는데 열이면 열 소년 비행자가 왜 그때 아버지가 안 된다는 말을 안했나. 작은 잘못 했을 때 꾸짖었다면 이렇게 안 됐을텐데. 이게 지금 교육의 가장 큰 역할을 아버지가 해야 합니다. 모든 교육을 어머니가 하고 있는데, 여성들이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역할과 어머니 역할이 합해짐으로써 교육이 이뤄지는데 모두 어머니가 맡고 있습니다. 지금 공교육 문제가 아니라 이미 가정교육은 공교육이고 사교육이고 붕괴되고 있다.

(사회자) 이런 부모에 관하여 성경은 어떻게 지혜를 주고 있나요.

(이재철 목사) 지난 시간에 부부는 서로 0순위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녀들이 성년이 돼서, 이를테면 대학에 입학해서 자기 의지로 유학할 수 있죠. 그런데 기러기 아빠는 성년 부모가 아니라 미성년자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부부 지간이 서로 0순위여야 하는데 자녀가 0순위가 된 경우죠. 그렇게 성경적인 부부를 깨어가면서 자녀를 교육시키는 것은 비인격체로 보고 인성교육을 포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귀한 자녀를 우리에게 맡기시고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는 인간다운 인간이 되게 해 달라고 맡기셨는데, 과연 인성교육을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 떳떳한 부모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기러기 부모 문제가 심각해서, 서울에서 저에게 상담해 주시는 분들한테는 절대 하지 말라고 말씀드립니다. 해외에서는 부인들에게 들어가라고 얘기합니다.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해외로 가면 어디든 기러기 엄마가 교육하는 현장을 주의깊게 봅니다. 무엇을 착각하는가 하면 자식에게는 Input 하는 대로 Output이 된다고 생각하죠.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화분도 뿌리를 내려야 옮겨도 살아남지 저 화분으로 뿌리내리지 않고 옮겨지면 살아남지 못하죠. 기러기 부모들이 실패한 경우를 수없이 봤습니다. 정말 그리스도인이라면 달라야 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참고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둘째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영국에 한달 동안 캠프를 갔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 학교 선생님들이 이 아이를 눈여겨 보셨습니다. 1년간 장학금을 주고 데리고 공부를 시켜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보낼 때 아빠 엄마와 아이가 굳게 약속했습니다. 1년 지난 뒤에 반드시 돌아오라. 가서 영국에 눌러앉아 있겠다면 가지 마라. 우리의 철학은 아이가 성년이 될 때까지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교육이 없습니다. 약속하고 갔는데 1년 뒤 선생님들이 전화가 왔습니다. 여기서 계속 공부하면 옥스퍼드로 쉽게 갈 수 있으니 교육시키자고 했습니다. 교장선생님께 감사하지만 사양하겠다고 했습니다. 둘째 아이는 내심 바랬을 수도 있겠지만, 약속한 대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들어와 줘서 감사했어요. 저는, 제 믿음은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부모 밑에서 정상적인 사랑을 받고 인격과 인성을 가진 아이로 자라나야 한다. 비록 고등학교 때 옥스퍼드 쉽게 갈 길을 하나님의 법대로 살기 위해 포기했다 할지라도,그 공부가 만약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이루시리라 믿습니다.

자식을 교육시키는 때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육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배제합니다. 이런 믿음일 수 없지 않겠는가. 하나님 믿는다는 것은 내 삶의 어느 부분에서만 역사하심을 믿는 게 아니라 내 삶의 모든 부분에서 주관자 되시고 가정의 주관자, 자식의 주관자 되심을 믿는 것인데. 그것을 믿는다면 부부가 떨어져서 어린 아이를 교육시킨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거기서 세속적으로 성공할 퍼센트는 몇몇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도박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이어령 선생님께서 유아교육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목사님께 간명하게 여쭙고 싶은 것은, 흔히 유대교육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유대인 교육과 기독교인 교육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이재철 목사) 기독교 교육은 지금 교회 교육을 얘기하겠죠. 유대인 교육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그들에게는 교육이 신앙 교육, 믿음 교육, 그 다음에 어떤 삶의 지혜에 대한 교육, 그들의 역사와 국가 공동체에 대한 교육이 다 합쳐져서 분리가 안 되지요.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만 있습니다. 신명기 6장 4절에 잘 나와있죠. 유대인들은 오래 전부터 이마에도 매고 문설주나 소매에 달아 놓았습니다. 무엇을 결정할 때 이것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가? 집안에 들어갈 때 나올 때, 하나님 믿는 사람인가? 이러면서 자녀들 교육 시켰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지금도 보수적인 유대인들은 붙여놓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유대 구약성경 율법에 따라 자식들 키웁니다.

그런데 그 성경 교육이 역사 교육입니다. 역사 교육은 유대 민족공동체를 잇게 하는 것이죠. 제가 어떤 분에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는데,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미국에서 태어난 유대인 어린아이들 중에서 난생 처음으로 유대를 방문하는 아이들을 탐방단에서 랍비가 만났다. 비행기 타고 들어갈 때 그 비행기가 이스라엘 국적기였는데 비행기가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들어갔습니다. 이러니까 그 랍비가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아이들이 전부 다 가방에서 유대인들은 상징하는 모자를 쓰고 예루살렘 향한 창문 쪽으로 앉아서 기도를 드리더라고요. 그야말로 신앙교육, 역사교육, 공동체교육이 다 연결된 것이죠.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독창성을 정말 중시합니다. 아까 선생님께서도 에디슨 어머니 말씀하셨지만 스필버그가 유대인인데 어릴 때 온갖 동물들을 다 잡아왔습니다. 우리나라 어머니였으면 다 혼냈겠죠. 그런데 그 어머니는 그 곤충들 동물들을 다 아이 등에 넣어주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독창성이 그대로 옮겨졌죠. 땅덩이도 우리나라 절반 밖에 안 되지만 주위 1억 5천만명 있는 아랍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이들이 국가 공동체 의식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교육이 갖고 있는 맹점은 이 부분을 결여하고 있는 거죠. 아이들에게 정말 신앙이 뭔지, 본질적으로 깨워주지 못하는 종교적 형식만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 하나님 가장 사랑하지만, 다음으로 돈, 가족을 사랑해서야

두번째로 개신교 교육은 우리나라 역사와 무관하게 사는 것을 뜻하는 것처럼 돼 있습니다. 이 나라 역사가 어떤 맥을 이어왔는지 생각지 않죠. 가톨릭은 성당도 전통적인 양식으로 많이 짓는데 개신교는 다 서양식으로 하고 이것이 신령한 것처럼 돼 있죠. 한국 개신교인들이 지금 가장 중시하는 것은 서구 신학자들이 쓴 내용이지만, 첫째 하나님 사랑하는 신앙심 이것은 우리가 세계 최고죠. 그런데 이 신앙심으로 두번째 사랑하는 것이 돈, 세번째가 가족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개신교 교인들이 가족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죠. 내 자식이 잘 되는 일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법 질서 같은 것도 얼마든 무시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이 나라에 위기가 왔을 때 젊은이들 중 몇 퍼센트가 우리 조상들이 지켜서 물려준 이 나라를 지킬 정도의 역사의식과 국가 공동체 의식이 있겠습니까. 많은 것 생각하게 합니다.

이번에도 천안함 사건 있었고 우리가 앞으로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일본을 떼어서 갈 수 없는 한 강대국들 틈에 끼여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학벌이나 이런 문제에서 그리스도인답게 큰 것을 생각하면서 자녀들에게도 정말 하나님께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게 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는 큰 그리스도인 자녀로 키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개개인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각성하는 한 언제나 소망이 있다고 봅니다. 인간은 늘 허물이 있지만 그것을 바로 세우기 위한 통로가 되겠다고 자기 삶을 던지는 성도가 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시기 때문입니다(박수).

(사회자) 이어령 선생님, 공동체 교육이 대단히 중요한 것 아닙니까?

(이어령 박사)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죠. 비슷한 사람들끼리 살았기에, 오히려 공동체 과잉, 동질성 과잉으로 살았습니다. 미국도 그렇고, 중국만 해도 50개 인종이 있는데, 인종이 많으니 공동체를 주장합니다. 이질적인 사람들끼리 사니까 그렇죠.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다 같은 사람들이죠. 그러니 오히려 동질성 과잉에서 나오는 피해가 오히려 컸다고 봐요. 우리는 나와 다른 것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어렸을 때도 형제들끼리 살면 사회성이 있지만, 혼자 있는 아이들이나 특히 다문화가정은 사회성이 모자랍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가족 다음에 바로 나라가 나오죠. 사회가 없다. 집 너머 동네라든지 마을이라든지 그게 있어야 하는데, 우린 수신 제가 다음 바로 국가. 그리고 국가라는 게 집 가 자를 쓰듯, 집의 연장이라고 생각하지 공동체의 한 체제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한국이 6·25에서 버틴 건 국가관이 아니라 가족관이었죠. 내 자식 내 남편 위해 싸운 거에요.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전 세계에서 디아스포라, 우리 민족이 우리 나라에서 살지 못하고 흩어져 사는 비율이 세계 1위입니다. 유대인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많은 나라에 살아요. 그런데 유대인들이 머리가 좋죠, 교육 잘 하죠, 공동체의식 있다 그래도, 어쩌면 유대인들의 오늘날을 만든 것은 다른 곳에서 살았기에. 다양한 문화권에서 살았기에, 지금도 유대인이 노벨상의 절반이죠. 그 민족의 역량 잴 수 있는 현재 유일한 도구가 노벨상인데, 그 반이 유대인입니다. 그런데 그게 대부분 유럽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몰려 있어요. 아인슈타인도 그렇죠. 다른 나라의 유대인들은 못 합니다. 정말 유대인이 뛰어나면 골고루 타야 하는데, 독일이라든지 소위 선진국에서. 교육이 잘돼 있는. 그런 사람의 가족이 어떤 환경에서? 남의 문화와 끝없이 접촉하는 거죠. 둘째로 유대인에겐 땅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거꾸로 지식을 먹고 살 수밖에 없었죠. 의사나 지식인, 작가라든지. 땅 없기에 생각하는 것 할 수밖에 없었죠.

아까도 말했지만 증기기관이 된 것은 증기기관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조건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2천년 전에는 노동력이 넘쳤기에 불필요했어요. 우리의 자녀들은 모든 것들이 공동체와 나 아닌 것과 마주치면서 일어나는데, 우리는 동질성 과잉으로 살았다. 이렇게 보면 여러분들 의외이실지 몰라도. 공기가 많으면 공기를 못 느낍니다. 허리띠가 잘 맞으면 찬지 모른다. 안 맞아야 알죠. 우린 지금껏 동질성 가지고 태어나면서부터 공동체라고 하죠. 그런데 다문화가정들이 많습니다. 단일 민족만 강조하면 걔네들 어디 갑니까. 정말 교육이 필요하게 됐습니다. 외국인에게 한국말 가르치고 그들의 문화 잘 융합시켜서 가야 하죠.


1백만 헤아리는 다문화가정 아이들 기르는 해법

다문화가정 건실히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삼성, LG 등이 가서, 베트남 다문화가정 있으면 “너희 말 잊지 말고 열심히 해라. 다음에 큰 사고 치지 않는 이상 넌 우리 회사 월남 지사장이야” 이렇게 해 주면 희망을 갖고 살죠. 두 개의 조국을 갖고 사는데, 한국 교육만 시키면 어떻게 됩니까. 이러한 것을 생각했을 때 이 문제는 심각합니다. 유대인들에게학살이 일어났습니까? 독일에서 상권 다 쥐고 우수하니까. 독일인이 우수하다 해야 하는데, 런데 유대인들을 코너로 모니까 자기네들끼리만 산다. 남이 배타한 것처럼 나도 배타한 것이죠.

유대인 교육에 대한 이야기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 꼭 기억하십시오. 나무꾼이 산 속에 가서 신선을 만났어요. 신선은 사람에게 잡히면 무조건 하고 소원 들어줘야 해요(웃음). 이 나무꾼이 가난해서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금덩이를 달라고 했습니다. 지팡이로 돌을 치니 금으로 바뀌었어요. 그런데 안 가져간다. 왜? 신선이 빨리 가야 하는데 왜 안 가져가냐고. 지팡이 달라는 거에요. 유대인들이 다 떨어져 살았어도, 만나면 유대인이다. 지팡이를 준 거에요. 이게 유대인 교육입니다. 지팡이 가져가면 아무리 가난해도 황금이 된다. 그게 교육이었다. 자식들에게 금 주지 말고 지팡이 주면 세계 어딜 가든 때리면 금이 됩니다. 젖 아무리 물려도 안 빨면 죽죠. 티칭(Teaching)이라 하지 말라. 러닝(Learning)이라 해라. CEO들도 교육이라 하지 말고 학습이라고 하죠.

그러니 내 결론은, 한국교육은 가정교육이든 민족교육이든 공동체교육이든 푸시(Push)하지 말라. 풀(Pull)을 해라. 끌어내라. 푸시를 풀로 바꾸면 한국은 정말 1등 민족인데, 공부하고 싶은데 공부해라 하면 안 하잖아요. 푸시를 풀로 끌어내는, 교육이 아니라 학습, 티칭이 아니라 러닝.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게 엄청난 것입니다. 그게 신바람이죠. 자발적으로 하면 한국사람 못 말려요.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점령하러 와서 우습게 알았죠. 나라 팔아먹는 놈들 천지라고 깔봤습니다. 일본이 못난 한국 중국에서 벗어나서 서구와 살자고 100년 동안 근대화 한 거죠. 이렇게 되니 업신여겼는데 3·1절 만세운동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다 죽은 줄 알고 형편없는 줄 알았는데, 독립선언문 문장 하며 보통이 아니었던 거죠. 유관순이 몇 살이었습니까. 내가 오죽하면 김연아 우승했을 때 쓴 글이 있는데(중앙일보 기고), 얘 나이와 유관순 나이가 같다. 하나는 죽었는데 하나는 금메달이었다. 나라가 있으니 가능한 거죠. 오늘의 영광에서 절대로 역사와 조국을 잊지 마라. 조국은 외투가 아니다. 덥다고 벗고 춥다고 입는 게 아니다. 피부 같은 거다. 벗을 수 없다. 마음 속으로 우러나는 애국하는 사람 얼마나 됩니까.


가르치고, 배우고, 생각하고, 창조하라

오늘 여러 얘기 했지만. 가르치는 방법으로는(Teaching Methodology) 안 된다는 게 전세계에서 드러났습니다. 러닝(Learning) 메소돌로지도. 왜? 애들이 젖 먹는데 계속 먹죠. 지들 좋은 것만 합니다. 일본에서 애들 고생시키지 말자고 유토리 교육(餘裕敎育), 최근까지 원주율을 3으로 썼어요, 3.14라고 안하고. 애들 힘들게 하지 말자는 거에요. 그러니 애들이 온전하겠냐. 학력 뚝 떨어지고, 교육을 애들한테 맡기니 고등학교도 없애려 했죠. 그러니 클린턴이 애들 낙제시키라고. 미국이 나라 망할까봐 다시 시작했습니다. 요즘 중고등학교 보면 30년 후 우리나라가 보입니다. 참 절망적이죠. 그렇기에, 우리는 그래도 일제 견디고, 전쟁도 치러보고. 그런데 요즘 애들은 학교에 뭐 잃어버려도 습득물실에서 안 찾아가요. 귀찮다는 거에요, 또 사면 되는데. 애들을 이렇게 가르쳤다. 누가? 우리가.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래도 희망이 있어요. 옛날에 어머니 아버지들이 그래도 뭔가 절도 있고, 그런데 요즘은. 젓가락질 보면 알아요. 이게 전통 풍습 이어받는 등록증인데, 냉면 먹을 때 어머니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얘는 스파게티만 먹어서 포크밖에 못 쓴다고 말해요. 젓가락질 모른다고. 젓가락은 배우기 힘들다. 힘들기에 전통을 물려주고 이게 학습입니다.

그런데 러닝만 해선 안된다. 티칭, 러닝, 씽킹(Thinking). 생각을 해야죠. 그 다음에 크리에이션(Creation), 창조를 해야 합니다. 창조 못하면 우린 죽습니다. 창조력 떨어진 국민들은 남의 노예가 됩니다. 그 창조를 난 요즘 매일 고민합니다. 그 모델이 누구냐? 엿새만에 천지를 창조하신, 혼돈에서 나눌 줄 알고, 하늘과 땅을 나눌 줄 알고. 그 다음에는 뭡니까? 전부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참 좋더라. 최고의 것이 즐기는 것이죠. 기독교가 잘못되면 음침하고 피흘리고 그런 종교로…. 왜 장례식처럼 살아야 됩니까? 즐거운 거잖아요. 무화과 나무 열매가 안 열리고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어도, 최고의 기쁨은 하나님 앞에서의 영광이고 기쁨인데, 거기 속에서 사는 게 은총이죠.

▲왼쪽부터 사회자 김종찬 씨, 이어령 박사, 이재철 목사. ⓒ이대웅 기자
그러니 절대 현실 부정 말고 긍정하라. 그런데 그 긍정은 지독한 티칭 러닝 씽킹 크리에이션이라는 과정. 그걸 거쳐야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게 제7일의 휴식이에요. 인간이 일을 해서, 일 난다고 하잖아요. 가만히 있으면 일 안나는데. 아무 것도 안함을 통해서, 하나님이 완벽히 만든 것은 그대로 둠으로써 창조의 과정 알게 되면, 그 다음엔 영원히 쉼. 그 쉼이 우리가 말하는 죽음이죠. 그런데 죄를 지은 사람은 쉴 수가 없어요. 죄인에게는 일곱째 날이 없다. 여섯째 날까지 되지도 않는 일 하다가 일곱째 날 맞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죄인들입니다.

(사회자) 말씀대로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이런 말씀 실천할 수 없는 환경의 가정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잘 가르치고 배우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창조하게 해야 하는데, 목사님 방법이 있을까요?

(이재철 목사)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부모 슬하에서 정상적인 것을 벗어난 경우가 있죠. 어릴 때는 부모 말씀 잘 듣다가 어느 순간에, 자기가 자식에게 강압적인 것을 요구한 만큼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죠. 그런 경우에는 반드시 부모님들이 자기 잘못 인정해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좋은 자식이 좋은 부모 만드는 게 아니고 좋은 부모가 좋은 자식 만든다고 분명히 얘기했습니다. 크리스천 부모라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기 자식을 바르게 인도하지 못한 잘못을 깨달아야죠. 그런데 깨달음만으로는 자식들의 삶을 바꾸기가 참 어렵습니다. 정말 그리스도인 부모가 잘못을 깨닫는다면 그리스도인답게 자식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직도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윤리적으로는 유교를 따르고 있습니다. 유교 논리는 무조건 부모는 명령하고 자식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가 잘못하면 얼마든지 용서를 구하고, 자식도 그리스도인이기에 그럴 때 성령께서 상처를 쓰다듬어 주시는 것이죠. 워치만 니라고 유명한 복음주의자가 있는데, 그분이 세계적인 복음주의자가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돈이 많았고, 마작하고 놀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이 어머니가 어느날 복음을 듣고 자기 삶을 보니 형편없는 엄마라는 걸 안 거죠. 자식을 일방적으로 요구만 하며 키웠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식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해달라고 했죠. 거기서 워치만 니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는 어머니가, 그를 무릎 꿇게 한 예수가 누구냐 하는 거였죠. 그래서 구부러진 삶을 살 뻔했던 그가 어머니의 사과 때문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대부분 부모는 라이센스(License) 없이 부모가 됩니다. 유치원 교사만 해도 라이센스가 있어야 하는데 세상의 부모는 라이센스 없기에 그만큼 실수가 많다. 젊어서 아이를 낳을수록 실수가 많을 수도 있죠. 자기가 자식을 잘못 키워서 관계 악화돼 고민하는 부모 만나면, 나는 꼭 자식 앞에 사과하라고 합니다. 말로만 하지 말라고 합니다. 말이란 자칫 잘못하면 엉뚱한 결과 낳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과 편지를 쓰라고 한다. 몇 번이고 두고드고 읽을 수 있게 하는 거죠. 어그러진 자식 때문에 상담 와서 자식에게 사과한 부모치고,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가정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삶의 전 영역에 걸쳐서 그리스도의 방법 추구해야 하잖아요.

두번째 경우, 사회에서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서 잘못된 경우에는 교회에서 케어(care)해야 합니다. 우리 큰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한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우리 애에게 부탁했어요. 부모가 이혼하고 아버지가 애 키우는데 밤늦게 들어오니 애가 도둑질도 하고 사고도 치고, 그러니 우리 애에게 데려가서 같이 데리고 있다가 아버지 들어오시는 밤 12시 쯤에 보내라고 하셨어요. 나한테는 한 마디 얘기도 안 했지요. 그래도 감사했습니다. 우리 집에 그런 믿음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잖아요. 그래서 6개월 이상 그렇게 했다. 크리스천 부모들도 자기 자식에게 너보다 똑똑한 아이와 놀라고 한다. 그런데, 더 똑똑한 남의 집 아이도 그렇게 얘기하잖아요. 그러면 우리 아이와 누가 놀겠습니까? 크리스천 부모라면 부족한 아이와도 얼마든지 어울리라고 하고, 언제든 누구를 데려와도 따뜻하게 해주겠다고 해야 합니다. 환경 어려운 아이들 위해 자식들로 하여금 통로 역할을 하게 하면 우리 사회 한층 훈훈해질 것입니다.

(참석자 질문) 요즘 창의력이 화두인데 그래서 아이들이 창의력 학원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풍토에서 성적과 창의력을 겸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이어령 박사) 늘 얘기했듯 3가지 ‘관’ 자를 붙이면 된다. 3관주의. 호기심이 없으면 죽인대도 안 해요. 관심이 있어야 해. 관심을 불러일으키려 책도 예쁜 거 갖다 놓으면 보는 거에요. 독후감 쓰라고 하면, 관심이 없는데 되겠어요. 인생에 어떤 관심이 있는지. 애가 뭐에 관심 있는지 봐야 합니다. 관심은 호기심이니까 조건이 없어요. 중요한 얘기 할께요. 어떤 사람이 나는 크리스천이다. 그런데 대부분 크리스천이 왜 크리스천 됐는지 조리있게 말하면 다 가짜. 어찌 하다 믿었다, 결혼도 어찌 하다 보니까 결혼한 거잖아요. 어찌 하다 보니까 주님 만나는 거지, 나는 주님 만나는 데 75년 걸렸는데 어떡하다 믿은 거지(웃음). 물론 준비는 돼 있어야죠.

창조력 발달의 조건 ‘3관’, 관심·관찰·관계

창조도 절대 가르친다고 해서, 어림 없습니다. 다 창조하면 창조가 아니잖아요. 남이 못하는 게 창조죠. 관심이 어디 있는지 봐라. 관심이 천재와 창조의 첫째 조건입니다. 우리 애가 뭐에 관심 있는지 아세요? 밤낮 게임만 하죠. 왜 게임만 할까? 그게 제일 재미있는 줄 알았는데, 다른 게 있으면 달라지죠. 다양한 기회를 주십시오. 음악도 듣게 하고 체육관도 가 보고. 관심이 어느 분야에 있는지 자꾸 관찰했다가, 적성보다 관심이 있으면 됩니다.

회사에 관심있는 애가 머리좋은 사원보다 몇배 낫습니다. 이렇게 해서 회사에 큰 파이프가 있는데 공장에 큰일날 뻔 한 파이프 구멍 뚫린 걸 발견한 사원이 있었어요. 그 많은 파이프 전문가들도 모르는데 어떻게 발견했나. 저는 파이프에 관심이 있어서 관찰했습니다. 관심있는 것은 관찰한다. 두 번째가 관찰이에요. 미키 마우스 손가락이 몇 개죠? 그렇게 많이 보면서, 4개에요. 우리는 그냥 봤다고 하는데 더 이상 못 본다. 관찰해야 합니다. 관심 있으면 잘 관찰한다. 남녀가 만났을 때 여성이 무슨 옷 입었는지 관심이 있으면 알잖아요. 관찰은 지적인 것. 분석적인 것이다.

마지막은 관계,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전기공학에 쓰든 어디 쓰든 관찰한 것을 나한테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다빈치는 얼마나 못된 사람인지 숙모가 우는데 조금만 기다리세요, 사람이 울 때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눈물이 앞을 가리면 절대 관찰 못합니다. 이별할 때도 관찰해야 합니다. 정에 물러서 눈물이 앞을 가리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관찰하는 건 아주 이지적이죠. 관심은 호기심에서 나오니 직관적입니다. 관찰은 객관적, 관계는 이해가 됩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관계를 맺어줍니다. 저는 문학과 관계를 맺어줬죠. 우리 형은 음악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같은 가족도 다 달라요. 같은 걸 해도 어떤 관계를 갖느냐에서 제각기 다른 목소리를 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도 즐겨 사용하신 ‘대화’를 회복하자

오늘 결론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대화가 없어요.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뭘 관찰하는지, 관계를 어떻게 맺는지 모르니까 문제에요. 닭살 돋는다고 대화 잘 안 하는데, 누가 시계로 재 봤는데 어린이날 가면 가족들이 같이 드라이브 하는데 가족들마다 5분도 얘기 안 한다. 대화가 없어요. 주말에 나와서 가족끼리 뭐 했나 관찰해 보세요. 대화하는 가정 얼마나 있습니까. 대화가 있긴 있죠. 뭐 먹을래? 대화를 해야 진실한데, 그렇지? 우선 관심, 관찰, 관계는 프로세스(process)다. 프로세스가 없으면 결과만 보는 축구 시합과 똑같아요. 축구는 왜 봐요? 2대 0만 보면 되지. 어떻게 2대 0이 됐는지를 봐야 하는데, 거기에 이르는 철저한 프로세스. 자식에 대한 사랑의 프로세스, 이게 결함돼서 교육이 필요합니다. 교육은 프로세스다. 똑같은 결론이라도 프로세스가 있는 결론과 단번에 내는 결론이 다르니까 관찰 관심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대화를 시작하라. 다 알게 되면 여자 친구를 사귀든 직업을 선택하든 모두 관심 관찰 관계의 프로세스로 이뤄지니, 하나를 알면 열을 알게 된다. 자식을 먼저 이해하는 부모가 되면 절대 탈선하거나 부모님하고 말하기 싫어하지 않는다.

대화를 안 하려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대화를 회복해서, 예수님과 하나님도 다 대화로 했어요. 기도만 해서는, 대화를 해야 응답이 있는데 이 대화는 부부 지간 부자 지간에 대화가 없는데, 교회에는 있겠습니까. 독백 뿐이에요. 부부간 대화부터 고쳐야 합니다. 집안에서 혹시 무슨 자기가 읽은 책이나 어디 갔던 마을 얘기 나누시는 분 계세요? 각자 느끼고 본 걸 얘기해요? 생활 용어만 얘기하지 자기 감정 표현을 안 합니다. 닭살 돋는다고 일부러 사랑은 무뚝뚝하게 표현합니다. 물 떠와 안 하고 물좀 떠와. 왜 ‘좀’을 붙여요? 대화만 고쳐도 커뮤니케이션이 되고 소통하게 됩니다. 자식들이 부모 보면서 결혼하고 싶지 않죠. 늘 싸우는데. 애들 스스로 인생에 관심 갖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 가족은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이 어떻게 되고 기러기 가족이 돼도 돌아올 수 있습니다. 탕자가 두려운 게 아닙니다. 탕자가 돌아올 아버지와 집이 없는 것이 문제죠. 돌아올 집이 없는 것이 서럽지 탕자가 서러운 게 아닙니다. 이렇게 보면 못된 아들이란 존재하지 않죠.

(사회자) 목사님께서 마무리 발언 해 주시겠습니까.

(이재철 목사) 그동안 많은 이야기 다 나왔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제 얘기 드리는 것보다 글을 하나 읽어드리고 정리하겠다. 지난 시간 이어령 선생님께서 박목월 선생님의 인간을 신발로 비유한 가정이라는 시를 소개해 주셨는데 저도 이 시 말과 관련된 글을 읽겠다. <비전의 사람>에서 소개했는데 1986년 중3 여학생이 쓴 글이다. 지금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다. 통학하던 소녀 이야기입니다.

이 아버지는 자식에게 좋은 교육 시키지 못했지만 이 아빠는 교육에 실패하지 않았다. 헌신하는 법을 삶으로 느끼게 하고 훌륭하게 교육시켰습니다. 사흘 전에 이야기를 나누는데 평생 고생해서 딸에게 세계 최고의 학교를 나오게 해서 출세시킨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어머니를 업신여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부모가 성공한 부모입니까?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고 주님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으면 우리가 세상의 가치관에 따라서 좋은 환경, 좋은 조건을 갖추려 하는 것이 우리 자식에게서 인간성을 빼앗고 불행하게 만드는 첩경이 될 수 있음을 깊게 생각한다면 오늘 밤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by 꾸미 | 2010/07/03 09:09 | 지성과 영성 만남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